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케다 노부시게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1525년 가이 국[* 오늘의 일본 야마나시현이다.]에서 가이 국 슈고 [[다케다 노부토라]]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. 어머니는 오오이노카타. 부친 노부토라로부터 불신을 받아온 장남 하루노부 대신 각별한 총애를 받아 후계자로서의 자리를 확정받았으나, 나중에 장남 [[다케다 하루노부]][* 다케다 신겐이 불문에 들어가기 전의 이름이다. '하루(靖)' 는 당시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한 자를 하사받은 것.]가 노부토라를 축출했을 때는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깨끗이 포기하고 쿠데타에 협력하였고, 이후 하루노부의 곁에서 참모로 활약하며 하루노부의 시나노 정벌에 많은 공을 세웠다. 1561년 9월10일 에치고의 [[우에스기 켄신|나가오 가게토라]]와 시나노 지배를 두고 싸운 제 4차 [[카와나카지마 전투]]에서 다케다군의 전법을 간파한 우에스기군[* 우에스기군은 산에 진을 쳤었다, 그래서 야밤중 선봉이 산위로 올라가서 야습하면 다케다 본군이 밑에서 퇴로를 차단하는 전법이었으나, 우에스기군은 그전에 미리 강을 내려가 있었다. 그 사이에 다케다 기습부대인 사나다군과 바바군이 산 정상에서 삽질하고 있을때, 우에스기군은 다케다 본진으로 쳐들어갔다.]을 막다가 적군인 우에스기군이 쏜 조총탄알에 심장을 맞아 가와나카지마(현 [[나가노현]] [[나가노시]])에서 전사하였다. 향년 36세. 다케다군은 이의 희생으로 나중에 사나다군과 바바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. 전사하고 우에스기군에게 수급(목)을 빼앗겼으나, 나중에 되찾은 후 [[다케다 신겐]]은 노부시게의 주검이 들어오자 통곡했다고 한다. 아들 다케다 노부토요에게 99개의 가훈을 남겼다고 한다. [[사나다 노부시게]](유키무라)의 본명 사나다 노부시게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.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형 대신 후계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형 신겐에게 충성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형을 위한 최후를 맞았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 충신으로 묘사되는 일이 많다. [[이마가와 요시모토]], [[오다 노부나가]], [[모리 모토나리]], [[다테 마사무네]] 등 형제와 계승권을 놓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 상대방을 끔살하는 일이 전국시대에는 일상다반사나 다름없는 일이었음을 감안하면 형을 철저히 지지하고 충성을 바친 노부시게의 경우는 확실히 매우 이례적인 데가 있다. 형과 몹시 흡사했다는 동생 [[다케다 노부카도]]와 함께 형의 [[카게무샤]]로 종종 활동했다고 하는데, [[카와나카지마 전투]]에서 사실은 본대에 있었던 것이 노부시게였고 별동대를 이끈 것이 신겐이라는 설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